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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3·1운동 100주년 원주시민 만세운동 기념식 및 만세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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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네트워크 댓글 0건 조회 5,129회 작성일 20-09-1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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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독립만세 원주를 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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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일 오전. 강원감영으로 시민들이 속속 모여 들었다. 이들의 손에는 작은 태극기가 하나씩 들려 있었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밝은 모습이었다.

이날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원주 곳곳에서는 기념식과 만세행진이 있었다.

이날 행사는 원주밝음신협과 원주YMCA, 문화의거리상인회,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원주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민족문제연구소원주지회, 원주시민연대, 원주여성민우회, 원주성폭력가정폭력상담소, 중앙청소년문화의집, 청년문화공동체 ‘더나은’, 원주민족미술인협회, 원주민족예술인총연합, 원주시청소년수련관이 참여한 ‘3·1운동 100주년 원주시민행사추진위원회’가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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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감영 앞에는 1,919개의 태극기가 달려 또 다른 장관을 시민들에게 선사했고, 대형 태극기에는 각자의 염원을 담은 글귀를 적어 넣기도 했다. 시민들은 김문덕 광복회 회장의 선창에 맞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만세삼창을 마친 시민들은 대형태극기를 앞세워 강원감영을 출발, KBS사거리와 원주오거리, 국민은행사거리, 문화의거리를 거쳐 밝음신협 앞에서 대형 태극기를 밝음신협 건물에 게시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어 원주시민행사추진위원회 단체장을 비롯한 원로들이 기미 독립선언서 낭독을 이어갔다.

“기미 독립 선언서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려 인류 평등에 큰 도의를 분명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에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 반만년 역사의 권위에 의지하여 이를 선언함이며, 이천만 민중의 충성을 합하여 이를 두루 펴서 밝힘이며, 영원히 한결같은 민족의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가 가진 양심의 발로에 뿌리박은 세계 개조의 큰 기회와 시운에 맞추어 함께 나아기기 위하여 이 문제를 내세워 일으킴이니, 이는 하늘의 지시이며, 시대의 큰 추세이며, 전 인류 공동생존권의 정당한 발동이기에 천하의 어떤 힘이라도 이를 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강권주의에 희생되어 역사가 있은 지 몇 천 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의 억누름에 뼈아픈 괴로움을 당한 지 이미 십 년이 지났으니, 그동안 우리 생존권에 빼앗겨 잃은 것이 그 얼마이며, 정신상 발전에 장애를 받은 것이 그 얼마이며, 민족의 존엄과 명예에 손상을 입은 것이 그 얼마이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운과 독창력으로 세계 문화에 이바지하고 보탤 기회를 잃은 것이 그 얼마나 될 것이냐. 슬프다. 오래 전부터의 억울을 떨쳐 피려면, 눈앞의 고통을 헤쳐 벗어나려면, 장래의 위협을 없애려면, 눌러 오그라들고 사그러져 잦아진 민족의 장대한 마음과 국가의 체면과 도리를 떨치고 뻗치려면, 각자의 인격을 정당하게 발전시키려면, 가엾은 아들 딸들에게 부끄러운 현실을 물려주지 아니하려면 자자손손에게 영구하고 완전한 경사와 행복을 끌어대어 주려면, 가장 크고 급한일이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니 이천만 사람마다 마음의 칼날을 품어 굳게 결심하고, 인류 공통의 옳은 성품과 이 시대를 지배하는 양심이 정의라는 군사와 인도라는 무기로써 도와주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나아가 취하매 어느 강자인들 꺾지 못하며, 물러가서 일을 꾀함에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하랴. …(중략)…

우리는 이제 떨쳐 일어나도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함께 나아가는도다. 남녀노소 없이 어둡고 답답한 옛 보금자리로부터 활발히 일어나 삼라만상과 함께 기쁘고 유쾌한 부활을 이루어내게 되도다. 먼 조상의 신령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를 돕고, 온 세계의 새 형세가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고 있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 다만, 앞길의 광명을 향하여 힘차게 곧장 나아갈 뿐이로다. <공약 3장>

하나, 오늘 우리의 이번 거사는 정의, 인도와 생존과 영광을 갈망하는 민족 전체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인 감정으로 정도에서 벗어난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하나, 최후의 한 사람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시원하게 발표하라.

하나, 모든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며,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기미 독립 선언서 낭독이 끝난 뒤에는 단체에서 정성스럽게 마련한 주먹밥과 어묵을 나눠먹으며 100년 전 3·1운동을 기념했다. 밝음신협이 마련한 윷놀이에는 참가자들이 몰려 늦게까지 윷놀이가 열렸다. 풍물공연과 연극, 플레시몹 공연도 진행돼 시민들이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원주의 3·1독립 운동 1910년 8월22일 매국노 이완용과 일본의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조약을 체결했다. 소위 한일병합조약으로 조선은 일본에게 국권이 찬탈되어 36년간 치욕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조선 왕조는 일본의 무력 국권 찬탈에 무력했지만 나라를 되찾으려는 백성들의 저항은 거셌다. 특히 원주의 항일의병 운동은 1896년 단발령 이후 수차례에 걸쳐 펼쳐져 향후 3·1운동으로 이어졌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강원도의 수부로서 26개 군현을 관할하는 감영이 있던 원주는 중부지방의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고 일제의 침략에 대한 항쟁도 어느 지방보다 치열했다. 이처럼 격렬한 항쟁은 동학농민운동과 의병항쟁을 거쳐 3·1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강원도와 경기·충북 등 3개 도(道)의 접경이면서 남한강과 섬강이 만나 수로교통이 편리하고 정보가 빨랐던 부론면에서 일찍 독립운동의 기운이 조성됐고 이어 소초면과 귀래면, 흥업면, 문막읍, 지정면, 호저면으로 3·1독립운동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교통이 불편했던 강원도에서는 비교적 늦게 만세시위가 전개돼 3월27일부터 4월12일까지 계속됐다. 4월8일에 이르러서는 귀래 문막 지정면 등 8개 마을에서 9차례의 만세 및 횃불시위가 전개되기도 했다.

1920년대 이후에는 원주지역의 민족운동을 이끌어 간 인사들을 배출해낸 원주청년회(1926년)가 결성되어 다양한 활동을 펼쳤고 1927년 10월에는 도내 최초로 전국적으로 가장 규모가 큰 항일사회운동단체인 신간회 원주지회가 설립되는 등 식민지 치하에서의 항일투쟁은 끊임없이 지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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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원주시민 만세운동 기념식 및 만세행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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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원상호 사진 원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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