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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단체소식 - 강원아카이브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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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네트워크 댓글 0건 조회 6회 작성일 20-09-1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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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아카이빙프로젝트 2020 지역읽기 

Archive Road

 

사람과 시간이 만나면 역사가 된다. 

기억의 기록의 지역문화저장소_강원아카이브협동조합에서는 지역의 근현대 역사문화 공간을 답사하고 기록하는 시민아카이빙프로젝트 Archive Road를 진행하고 있다. 기억이 모여있는 마을의 이야기는 시대를 만들고 삶을 형성해 온 역사의 주춧돌이다. 지역읽기 Archive Road는 익숙한 듯, 무심하게 살아 온 마을의 숨은 장소를 찾아 사진과 글로 기록하고 담화를 통해 지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보는 시민참여형 프로젝트이다. 이번(2020.4.12.)에 진행한 Archive Road는 신들의 숲, 신림면(神林面)에서 시간의 매듭을 찬찬히 풀어보기로 했다.

 

2020. 4. 12(일) Archive Road 동선 

11:00 행구수변공원 출발 ~ 11:30 용암리 용소막성당 ~ 13:00 용암리 중앙선 신림역 ~ 14:00 성남2리 절골, 석남사터 ~ 15:00 신림2리 대한민국 지하수개발 발상지 

 

신림면은 원주의 남동쪽 치악산과 백운산의 중간에 위치한 지역으로 성남리에 있는 성황림을 신(神)적인 숲이라 신성하게 여기고 성황제를 올린 것에서 ‘신림(神林)’이라 하였다. 신림면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 호되고 있는 성황림과 용소막성당, 후고구려 태봉국의 시조였던 궁예의 근거지 석남사터가 있는 유서 깊은 지역이다. 또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65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대한민국 최초로 지하수를 개발한 역사적인 장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11:30] 100년의 견딤으로 지켜온 공동체의 성지, 용소막성당 

아카이브로드가 첫 번째로 찾은 곳은 신림면 용암리에 위치하고 있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용소막성당이다. 1915년 건립된 용소막성당은 횡성의 풍수원성당과 원동성당에 이어 강원도에서 세 번째로 건립된 고딕양식의 근대건축이다. 계절마다 아름다운 풍경과 아늑한 빛을 만날 수 있는 용소막성당에서 시간의 봄을 걸어본다. 기록 동무들과 함께 성체의 길, 생명의 숲을 걸어보는 기쁨도 추억의 한 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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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소막은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이주한 신도들에 의해 교우촌이 형성되며 공동체의 구심점으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용소막공소는 1898년(고종 광무2년) 풍수원성당의 전교회장이던 최석완(崔碩完)이 원주 본당 공소 모임을 시작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처음에는 원주 본당에 소속되어 있다가 1904년(광무8년) 5월, 프와요(Poyaud, 表光東)신부가 본당 초대 주임신부가 되면서 독립성당이 되었다. 설립 당시에는 초가집을 성당으로 사용하며 원주·평창·영월·제천·단양 등 5개 군, 17개의 공소를 관할하며 교세 2,000여명의 큰 본당으로 발전했다. 제3대 주임 시잘레(Chizallet, 池士元)신부는 중단되었던 성당건축을 다시 재개하여 직접 성당을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를 참여시켜 1915년 가을에 건물을 완공했다. 일제강점기 때의 용소막성당은 종(鐘)과 제단의 철제물이 공출되어 일본군의 전쟁도구로 사용되는 수난을 겪었다. 한국전​쟁 때는 북한군의 식량창고와 마구간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사목문서가 불타는 등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성당이다. 

 

한국 성서번역의 역사, 성서학자 선종완 신부 유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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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옆에는 이곳에서 태어나 평생을 성서번역과 연구에 몰두한 선종완 신부(1915~1976)의 삶과 공적을 기리는 유물관이 건립되어 있다. 선종완 신부는 한국교회에서 처음으로 구약성경을 혼자 번역한 성서번역의 역사를 대표하는 성서학자로 근대 천주교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신학교 시절부터 라틴어와 희랍어, 히브리어 등 9개 국어에 능통했던 그는 경성천주교신학교, 성신대학, 가톨릭대교수로 후배 사제를 양성하며 대부분의 사제생활을 성서연구와 교육에 몰두했다. 유물관에는 영어, 라틴어, 독일어, 이탈리아, 로마, 러시아 등 여러 나라의 성경과 성지 순례에서 수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원주의 작은 마을, 용암리에서 시작된 한국 성서번역의 살아있는 역사를 만날 수 있다니, 다시 한 번 기록의 의미와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할 이유를 생각해본다.


[13:00] 용암리 중앙선 신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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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답사 장소는 새로 개통되는 원주-제천 복선전철로 인해 연말에 폐선되는 중앙선 신림 간이역을 찾았다. 1941년 7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수많은 사연들이 오르내리고, 달리고 했을 작은 역사의 이야기도 이제 마지막 줄을 써내려가고 있다. 1950년에는 한국전쟁으로 역사가 소실되었고 1956년에 다시 역사를 신축 준공했다. 현재 무궁화호가 운영되는 간이역으로 폐역이 된 후 새로운 지역자원으로 활용 방안을 찾고 있다고 한다.


[14:00] 후고구려 궁예의 근거지 성남2리 석남사(石南寺)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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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로드 세 번째 길은 치악산 자락에 있는 성남2리 절골로 발길을 향했다. 밖에서는 마을이 있는지, 길이 있는지 알 수 없고, 볼 수 없는 곳으로 한 번에 찾아갈 수 없었다. 절골로 들어가는 길은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을 넘어야 했다. 석남사는 후고구려를 표방한 태봉국의 시조, 궁예가 근거지로 삼은 치악산 아래 성남2리 절골에 있었다고 한다. 궁예가 처음으로 작전이 가능한 군대를 이끌고 들어와 야망을 펼쳤던 곳이 바로 이곳 석남사터다. 석남사라는 절이 있었기에 절골이라는 지명으로 불리고 있는 듯하다. 양옆은 치악의 높은 산과 바위벼랑으로 둘러싸여 있고 마을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밖에 없는 천연의 요새로 궁예가 작전을 수행하기에 가장 최적의 장소였을 것이다. 후고구려를 표방한 태봉국의 시조 궁예는 ‘892년(진성여왕6년) 북원의 호족 양길에게 군사를 나누어 받아 치악산 석남사를 근거지로 하여 주천, 내성(영월), 울오(평창), 어진(울진)등을 차례로 정복해 나갔다’(삼국사기_궁예10편). 다락논으로 사용되고 있는 석남사 절터와 논두렁을 바치고 있는 거대한 주춧돌, 산등성이에 누워있는 부도탑과 기왓장들이 천년의 역사를 말없이 말하고 있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와 계곡에서 불어오는 칼 바람은 궁예의 거친 발자취를 더 이상 찾지 말라는 신호였다. 누가 천년의 소리를 깨우고 있는가?

 

[15:00] 신림 대한민국 지하수개발 발상지, 신림2리 마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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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로드의 마지막 답사지는 대한민국 최초의 지하수개발 발상지로 상징되고 있는 신림2리 마지뜰이다. 마지공원에는 1965년 2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개발한 전국 최초 지하수 개발을 기념하는 ‘박정희대통령 지하수개발 유적비’가 건립되어 있다. 1960년대 중반 보릿고개라고 불리던 어려운 시절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부지방에는 극심한 가뭄이 닥쳤다. 논 바닥은 갈라지고 모를 심지도 못하고 심은 모도 말라비틀어질 지경이었다. 박대통령은 가뭄이라는 자연조건을 해결하기 위해 지하수개발을 위한 시험장 설치를 지시했다. 지시를 받은 장창국 1군 사령관은 신림 지역의 세 곳에 관정을 설치하고 물량을 측정하면서 농업용 지하수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통해 소형관정과 농업용수 개발, 식량증산과 새마을운동의 기폭제가 되어 농촌소득 증대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공식적인 지역읽기 답사를 마무리하고 원주로 돌아오는 길에 들린 금대리 원주천댐 건설현장, 댐 건설로 인해 이곳에서 평생의 삶을 살아온 주민들의 흔적도 함께 떠났다. 그들의 삶터를 둘러보았으나 이미 늦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지금은 댐 건설지역의 모든 시설물은 철거되고 가림막이 세워지며 새로운 시간이 쌓이고 있다. 

 

흘러가는 것은 시간뿐이 아니라 삶도 함께 흐른다. 

시간의 흐름을 함께하고 교류한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다. 

순간의 기억은 기록으로 남는다.

 

Archive Road 참가자 : 김경숙, 김선임, 김시동, 김순영, 이강록, 이혜순, 양선석, 정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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